아가는 이야기 [2017] [List] 
Oct 14 - 16, 2017 | 당신, 저 삿갓을 쓰면 지금 하늘로 막 날아 올라갈 것 같애
   

 
   지리산

   10월 14일 오전, 부산의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함양으로 가는 버스에 편히 앉아 지나치는 풍경을 즐기고 있는데,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도착예정시간을 알려달라는 연락이 온다. 오후 2시정도면 도착하지 않을까싶다고 하니 함양에 도착하면 어디서 어느 버스로 갈아타고, 어디서 내리며, 내린 다음에는 어떻게 걸어 올라오는지, 심지어 대문이 어떻게 생긴 집인지까지 다시 알려주신다. 아무리 길치라도 이 정도면 못찾아가려고 해도 못찾아 갈 수가 없겠다.  
 

   한국의 도로망과 대중교통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되어 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간선도로와 각종 대중교통수단은 왠만한 도시와 도시 사이를 2-3시간 정도에 연결해 낸다. 부산에서 지리산의 위쪽에 위치한 함양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경북 영일만의 끝자락 구룡포라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 당시 포항을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꾸불꾸불, 터널도 지나면서 1시간을 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르는 길을 달려야 했다, 지금은 직선도로로 택시를 타니 10분이었다. 경주는 수학여행이나 가는 먼 곳이었는데, 요즘은 통근거리란다. 울산은 시내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나가 다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몇 시간을 더 가는 먼 곳이었는데 요즘은 금방 올테니 잠시 기다리란다. 이제 한국에 오니 거리감각이 낯설고 공간감각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머물 민박집은 남원권에 속한 산내면으로 오래된 사찰인 실상사가 있는 곳이다. 지리산은 처음 와 본다. 함양서 시외버스를 내려 차를 갈아타고 목적지로 가는 길 내내 이정표는 우리가 탄 차가 남원방면으로 가고 있다고 일러 주는데, 도무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지리산을 가려면 남원으로 가야하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한국지도를 찾아 공부를 해야겠다.

 


 


 

    오, 지리산의 위쪽 1시방면이 함양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중심에 놓고 함양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가면 10시 방향에 전라북도 남원시가 있고, 그 아래 7시 방향이 전라남도 구례군,  다섯시에서 여섯시 방면에 경남 하동군, 그리고 세시 방향에 경남 산청군이 있다. 이렇게 이해하니 나는 쉽다. 내가 가는 목적지인 산내면은 지리산 바로 위쪽에 위치해 있으니 함양에서 가려면 남원방면으로 가다가 빠져나가야 하리라. 지리산은 많은 사람들을 품고 있는 산이구나.

 

    차에 탈 때부터 기사분에게 우리는 산내에 가니 그곳에 좀 내려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버스의 앞쪽에 자리잡고 앉았다. 우리는 이 버스의 기사아저씨로 인해 가는 길 내내 즐거웠다. 길가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경적을 울리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차에 올라타는 시골아낙네의 온갖 일에 참견한다, ‘지난 번에 아저씨, 산에 버섯따러 갔다가 다리 부러지더니 이제는 괜찮소?’ 그러다 이제는 우리를 위해 운전중에 관광안내원까지 자처하셨다. ‘저어기 보이는 것이 천왕봉인데, 앞에 있는 산을 세 개만 폴짝 뛰어넘어가면 되여’까지. 


    심지어는 우리의 다음 일정까지 걱정해 주신다. 며칠 후 산내에서 전주로 갈 예정이 있다고 하니, 가는 도중에 여러 차례에 걸쳐 자세히 알려주신다. ‘인월’에서 출발한 버스가 우리가 조금 있다 내릴 곳까지 오는데 10분이 걸리니 몇 시 몇 분에 여기 나와서 기다리면 된다고, 방향도 반대로 탈까봐 걱정이 되는지 우리가 진행해 온 방향으로 타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되었나 보다, 중간 기착지에 내리니 매표소로 직접 달려가서는 인월에서 출발해서 이곳 산내를 거쳐 전주로 가는 시간표를 매표소 직원에게 내놓으라고 하더니 나보고 사진을 찍으란다, 꼭 전주직행이라고 쓰인 차를 타야한다고 하면서. 도데체 이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정겹고 다정한 거야. 다정도 병인갑소.


시골 시외버스 정류장의 매표원이 갖고 있는 정겨운 버스시간표

 

 

 기사아저씨의 구수한 말투를 그대로 옮겨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사흘을 머물렀던 한옥의 별채


 


민박집 앞마당. 
고양이 ‘용이’는 밥때가 되어 ‘용이야, 용이야’하고 부르면 저 속 어디에선가에서 나타났고,
줄에 묶여있던 개는(이름을 잊었다) 어찌나 격렬히 뛰는지 밥주기가 힘들었다.  


 

    우린 이곳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완전한 휴식이었다. 


   원래 아침식사만 제공하기로 되어있던 민박집 주인께서는 넉넉한 인심을 우리에게 주었다. 안채 부엌에 밥을 넉넉히 해놓을 것이고, 반찬은 냉장고에 있으니 끼니 때가 되면 그냥 꺼내 먹으란다. 민박손님에게는 원하면 일인 한끼당 만원을 더 받고 점심이나 저녁을 제공하는데, 여기 오는 분들 대부분은 근처 식당에서 파는 추어탕이나 뭐 이런 것들을 사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근데 우린 나물반찬을 좋아하는 듯하니 그냥 알아서 꺼내 먹으란다. 채식주의자 주인분이 만들어 놓은 온갖 나물반찬과 신선한 야채로 우린 매 끼니 풍성한 식사, 그것도 공짜 식사를 즐겼다. 구들목은 뜨끈뜨근하고, 안에는 잘말린 잎으로 만든 차가 두 종류나 준비되어 있었는데, 주인장께서 이 차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던 터라 하마트면 우린 차가 있는지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우리 부부는 좋아서 바보같이 실실 웃었다.


 

꽃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이틑날은 10월 15일 일요일, 주인장께서는 외출했다 늦게 들어오신다. 오늘 점심은 온갖 나물반찬이 있으니 산나물 비빔밥을 해먹자. 계란을 써도 좋다고 허락은 안받았지만 냉장고의 계란도 두 개 꺼내 부쳐 비빔밥에 얹어 맛있게 먹고는 실상사 산책을 나간다. 


 

남원 실상사의 . 삼층석탑
통일신라말에 지어진 것으로 ‘ 석탑 모두 윗부분이 비교적 원래대로 남아있다고 쓰여있다.   

 


 

실상사의 소나무


실상사의 연꽃



연꽃연못 옆에는 토종벼 복원을 위한 ‘졸장벼’논이 있다.

 

   이렇게 쓰여있다.
  "
토종벼 가운데 50Cm 이하의 가장 작은 키로 짧은 이삭에 낱알이 촘촘하게 붙어 졸장부를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이다. 농부들의 작명 상상력의 해학성이 돋보이는 이름이다. 키가 작아 쓰러질 염려는 없고 이삭목이 거의 없다시피 하며 한 이삭당 140-16여개의 낱알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까락이 없고 낱알은 황흑색을 띄고 있다. 밥을 지으면 개성적인 향이 있고, 색감도 진하다. 쌀알이 단단하고, 먹을 수록 깊은 풍미를 느끼게 한다는 평이다. 전남 화순의 일부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옛농부들은 그 힘든 농삿일을 하면서도 해학을 잊지 않았다, 짖굳기까지 하다 .


실상사 입구의 오경석

 
 

   실상사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오후 늦게 온돌방 아궁이에 불을 넣는다. 어제 이곳으로 오는 차안에서 민박집 주인께서 몇 시에 도착하느냐고 묻는 연락을 보낸 것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 온돌방을 가장 따뜻한 온도로 데워놓기 위함임을 이제사 알았다. 따뜻한 정도보다는 더 뜨겁지만 그렇다고 너무 뜨겁지도 않아 온몸을구들에 눕히고 몸을 지지던, 아주 오래 전 시골에서의 온돌방, 바로 그 온도였다. 우린 어젯밤에 온몸을 녹삭지근하게 지졌다.

   

    아침에 몸이 참 개운했다.


 

 

    오늘은 조금 식은 온돌을 덥히기 위해 집사람이 아궁이에 땔깜을 넣고 애를 쓴다. 서울출신 여자가 저걸 할 수 있을까? 한참 불을 지폈으니 이젠 방이 어제처럼 따끈따근해져야 하건만, 벌써부터 가마솥의 물은 펄펄 끓는데도 방구들의 따듯함은 영 신통치가 않다. 장작을 더 넣어야 하나? 뭔가가 좀 이상한 것 같지, 우린 불때는 게 아무래도 서툰 것 같애…


    이 방은 덥혀진 물이 순환을 하면서 방의 윗쪽 바닥을 덥혀주는 구조라 한다. 뜨거운 물이 지나갈 수 있도록 밸브를 열어줘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 밸브가 잠긴 채로 불만 지폈으니 가마솥의 물만 끓고 바닥은 덥혀질 리가 없지. 장작하기 힘들텐데 주인장께 미안하기 그지없어라.
 

 

 

 

민박집 마당의 평상에 앉아 내다보면 산밑으로 실상사가 보인다평화로웠다.

 

    산책도 했고 아궁이에 불도 지폈으니, 이제 저녁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자. 

지리산 자락의 함양, 산청, 남원, 구례, 하동 그 어디 산천이 좋지 않은 데가 있을 것이며, 좋은 사람이 살지 않을 곳이 있을까만, 남원의 산내로 온 것은 집사람의 학교선배인 이상은선배 부부가 18년 전에 이미 귀농하여 살고있으며, 나의 후배이자 동료인 오관영군 또한 이곳에 있어서였다.  

 

   이렇게 저녁에 함께 모였다. 인구 2천여 명 정도인 이곳 산내면에 귀농.귀촌 인구가 5백여 명이란다. 보아하니 이들은 참 재미있게 사는 듯하다. 오늘도 낮에 남원에서 면대항 축구대회가 있었단다. 서로 모여 축구도 하고 족구도 하고, 탁구도 하고, 살림살이 공부도 하고, 수확물도 음식도 나눠먹고, 사실은 주로 같이 놀면서 그렇게 서로 정있게 사는 것 같다. 술 한잔 하며 온갖 얘기를 나눈다. 올해 환갑이었던 이상은선배를 핑계로 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 동네 잔치하자고 했더니 안했다고 서로 구박하고, 동네벗이 찾아오면 내놓지 않고 이집 주인장 혼자만 자기 전에 한 잔씩 홀짝 먹던 담금주를 먼 곳에서 손님이 오니 내놓았다고 ‘아까워 어쩔까’라고 객들이 주인장을 놀린다.  


    무릇 좋은 벗과 있으면 서말 술이 모자라고, 마음이 맞지 않는 이와 있으면 반 잔 술이 넘친다 했다. 돌아가면 이곳이 그리워 질 것같다.

 

    귀농 18년차 선배부부는 논농사 2천평, 밭농사 1천평을 짓는다. 모든 비용을 제하고 여기서 나오는 1년 수입은 7백에서 8백만원 정도란다. 이곳에서 1년을 생활하기 위해서는 1천 5백만원 정도가 드는데 논농사와 밭농사에서 1년 생활비의 반 정도를 버니, 나머지 반을 더 벌어야 한다. 이상은 선배는 그래서 지금껏 지방자치단체의 1년 계약직 숲해설사로 일해 그 나머지 돈을 충당했는데, 내년부터는 그 고용형태가 바뀔 것 같다고 조금 걱정을 했다.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1년에 7-8백만원 밖에 벌지 못하는 농사를 왜 짓냐고.
……………

 

   나이가 들고 일상의 직업에서 은퇴를 할 시기가 다가오면, 나는 시골의 공기좋고 물맑은 곳으로 가서 노년을 살고 싶은 것인가? 이런 질문에는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의미가 함께 있어야 하리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 그 속에서의 지금 나의 ‘삶의 방식’을, ‘생각하는 방식’을 은퇴라는 시점을 맞이할 때는 최소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인월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며 빵집에서 대화를 나눴다. 
  지난 여름, 사람들과 스캇 니어링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얘기를 나누던기억이 난다. 

 

    
지리산 뱀사골 입구

 


오경석과 이상은 선배 부부
 

    16일 월요일, 서울에서 6시 30분 저녁 모임이 있다. 많이 모여 재미있게 놀자고 했다. 여기서 시외버스를 타고 그 모임에 제 시간에 닿으려면 점심을 먹고는 바로 출발해야 하는데, 산내에서 15분정도 거리인 뱀사골까지는 다녀올 시간이 된다. 뱀사골 입구의 ‘신선길’을 따라 1시간 정도를 걸어 올랐다.
 

 

    

    숲해설사가 함께 있으니 지나가는 온갖 나무와 꽃들에 대해 일러준다. 

    옆에서 걷던 마누라가 “지금 언니가 숲해설하고 있는 거야”라고 작은 소리로 내게 말한다. 혹 우둔한 남편이 이 고마움을 눈치도 못채고 있을까싶어 은근히 걱정되었나 보다. 

 

 


    서울가는 차시간에 맞추려면 이제 이 계곡 즈음에서 돌아가야 한다. 위로 올라가는 계곡과 밑으로 내려가는 계곡을 바라보며 지금 잠시 머물렀던 이곳에서, 숲해설사 선배는 한국현대사의 가장 아픈 한 줄기를 담담히 풀어냈다. 
 

  “여기가 빨치산들이 유인물을 만들던 곳이래”
  그런가요? 

  “1948년 여순반란사건 (우리 세대는 이 용어로 배웠는데, 이제는 ‘여수.순천 사건’으로 부른단다) 때, 반란을 일으켰던 14연대의 좌익사병들은 제일 먼저 장교들을 찾아내 모두 사살했대. 그런데 그 사살당했던 장교들의 대부분이 좌익장교들이었다는 거야. 장교들은 남로당 중앙당에서 관리하고, 사병들은 지역조직, 즉 도당이나 군당조직에서 관리했대, 그래서 서로 몰랐다는거야. “
 

   그랬다고요?


    역사적 사실이 그러했다. 반란을 일으켰던 좌익사병들은 자신들의 좌익상관이자 중앙당 고급당원 장교들부터 다 쏴죽이고는 토벌작전이 벌어지기 전에 모두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인민군이 내려와 해방이 될거라고 믿고 앞으로 나섰던 일반인 좌익들은 반란을 일으켰던 군인들이 모두 지리산으로 도망가 버리고 없는 도시와 농촌에서 잡혀 죽거나 자살하거나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는 길 밖에 없었다.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은 ‘미제의 앞잪이가 되어 일부러 이 사건을 일으켜 군대 내의 당조직을 일망타진했다’는 혐의로 나중에 북에서 숙청당해 죽었고, 빨치산 지도자 이현상은 같이 숙청당해 홀로 지리산을 떠돌다 토벌군에게 죽었다.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남한의 대통령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당시 이 남로당의 군사총책이었다. 좌익사병이 좌익장교들을 몰살시키고, 남로당 지도자는 북로당에게 죽임을 당하고, 빨치산 사령관은 부하들에게 버림받고 떠돌다 사살되고, 그 군사총책은 반란이 일어나자 바로 전향해 후일 남한의 장기집권 대통령이 되고....뭐, 이런 역사가 다 있을까.


    난 지리산에 와서 아름다운 산과 단풍과 계곡만 보고싶다, 이념으로 편갈라 죽고 죽이는 것은 인간밖에 없는 것을.


실상사 입구에서 파는 삿갓과 밥주걱


 

    실상사 입구에 몇 군데의 가게와 식당이 있다.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은 나무를 깍아 만든 생활용품들이 많았다. 그런데 유독 저 삿갓이 눈에 띄었다, 일상생활용품이 아니어서 그랬으리라.


    그 삿갓 앞에서 집사람이 내 백발과 흰눈썹을 가지고 농을 건다.
“당신, 저 삿갓을 쓰면 지금 신선이 되어 하늘로 막 날아 올라갈 것 같애”
집사람은 내 허연 머리며 눈썹이 말은 안해도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여보, 아냐! 만약에 내가 정신줄을 놓고 저 삿갓을 쓰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면, 이것봐 여기, 이 주걱을 왜 삿갓과 같이 팔겠어, 밥주걱 손잡이가 이렇게 길잖아. 정신줄 놓고 올라가는 서방이 있으면 그 궁뎅이를 찰싹 소리나게 때리라는 거야, 정신이 번쩍 들게”


 


실상사 부근 산내면 민박집의 오경석

 

아무래도 지리산은 그리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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