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는 이야기 [2017] [List] 
Oct 04, 2017 | 구룡포 - 선산과 친구들
   

고향의 선산 (2008)
고향, 구룡포 방문 (Nov 11, 2011)
 


추석날  아침 구룡포의 선산 (Oct 04, 2017)


추석날  아침 유(兪)씨 가문의 후손들이 조상에게 차례상을 올리기 위해 선산에 모였다.
50여명이 약간 넘었다. 내 윗세대는 이제 남은 이가 대여섯, 내 아래로 두 세대가 더 왔다.
제일 밑의 세대는 저렇게 빨간 옷, 노란 옷들을 입은 예쁜 아이들이다.
(Oct 04, 2017)


선산에서 차례를 올린 후 근처 숙모님댁으로 옮겨갔다.
숙모님은 내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함을 섭섭해 하셨다, 이 일을 어쩌나.
탁트인 바다풍경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구룡포 삼정리의 바다풍경 (Oct 04, 2017)
 


추석날 오후의 구룡포 항.
 



선산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 KTX편으로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으나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이 있을 터.
이들을 만나러 따로 날을 잡아 내려올 참이긴 해도, 얼른 보고싶어 전화를 하니 상도와 익태가 있다.    

 


관광객이나 외지인을 상대하는 항구 앞의 가게들을 제외하고는 문을 연 곳도 없다.
나는 멍게가 먹고 싶었다.
시장안 깊숙이 들어가 추석날에도 바삐 일을 하는 곳을 찾아 저리 멍게를 사고, 맥주를 사고
항구 한편, 파출소 부근의 정자에 앉아 저 멍게를 거의 다 내가 먹었다.
어찌 그리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구룡포항의 저녁풍경.

이 날 서울로 돌아가지 못했다.
포항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형님과 의기투합했다, 구룡포서 하루 머무르기로.
형님은 형님친구들과, 나는 내 친구들과.  


구룡포항의 등대.


구룡포항의 등대.


다음 날 아침 호텔창 밖으로 본 구룡포 항의 전경 (Oct 05, 2017).
구룡포 항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고기가 잡히지 않는 어촌에는 인구는 줄고 삶은 팍팍하다.
항구 앞으로 줄지어 선 대게를 파는 화려한 가게들은 대부분 객지인이 주인이란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구룡포지역 어업이 얼마나 번성했던지 당시 ‘영일군수 보다 구룡포수협 조합장을 하는 것이 더 낫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바다경기가 번성했다고 한다. 심지어 ‘구룡포에서는 동네 개도 만원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개 소리가 파도위로 떠다닐 정도로 돈이 흔했다고 어르신들은 말했다.

1986년 고래잡이 포경이 금지되기 전까지만 해도 구룡포 항포구에는 오징어잡이, 대게잡이, 고래잡이, 청어잡이 어선이 하루 수백척 드나들었다. 오징어 배만 2백척 넘게 들어왔으니 그 규모가 어떠했겠는가. 그 영향으로 1970년대 당시 구룡포 인구가 4만명에 육박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의 위용을 자랑할 만큼 돈과 사람이 풍성했다는 말일 게다.

그러나 그것도 다 이젠 옛말이 되었다. 고래잡이는 포경금지로 아예 중단됐고, 그렇게 흔했던 오징어도 연안수온 상승과 중국어선들의 싹쓸이로 이젠 씨가 말랐다. 바닷속은 밑바닥이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으로 어자원 고갈이 심각해지고 있다. 고기가 먼바다로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고기가 없으니 사람도 구룡포를 떠나 당시 4만명의 인구가 이젠 8천5백여명으로 급감했다.]    'BreakNews 대구경북'의 기사 (2017-10-27)

 


다음 날 아침 호텔창 밖으로 본 구룡포항의 전경 (Oct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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